[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종교 융합: 바미얀에서 만난 태양신과 미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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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종교 융합: 바미얀에서 만난 태양신과 미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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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의 첫 빛이 바미얀(Bamiyan) 계곡을 적실 때, 동쪽을 향한 거대한 불상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고대인들은 이 순간을 ‘미래불의 강림’이라 믿었다.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자리한 바미얀 석굴은 단순한 종교 유적이 아니다.(그림1) 태양의 궤적과 정확히 맞닿은 대불의 방향, 페르시아 태양신과 불교의 ‘광명(光明)’ 사상이 융합된 독특한 상징체다. 바이얀 대불은 왜 ‘태양형 불상’으로 불릴까?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대불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문명 교차로의 숨은 코드를 해독한다. 그림1. 황금 동대불과 서대불 사이 380미터 열반상이 있었던 바미얀 가상도. 필자 제작 학원강사 연봉
   △ 인도와 그리스-이란 문화의 교차로, 바미얀 바미얀은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사이 해발 2,500미터 고지대 분지에 위치하여 해돋이와 해넘이가 수직 절벽 사이로 비추는 장관을 이루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그림2) 『서유기』에서 현장 법사와 손오공이 넘어야 했던 대설산(大雪山)은 힌두쿠시 산맥이며, 소득증
바미얀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인도 문화와 북부의 그리스-이란 문화가 융합되는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다. 이러한 문명 교차점에서 불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인도-이란계 민족인 사카족(Saka) 등에 의한 미트라(Mithra) 신앙이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빛의 구원자" 개념을 가진 태양신 미트라는 고대 여행자들이 이곳의 태양 광경을 신성시하며 얻은 종교적 영감과대출영업카페
함께 후일 불교의 미륵 신앙과 결합하는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그림2. 바미얀(Bamiyan) 석굴 지형도 △ 유럽인의 눈에 비친 바미얀: 오해에서 이해까지 바미얀은 19세기 영국 동인도회공무원은행신용대출
사의 중앙아시아 진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832년, 영국의 외교관 알렉산더 번스(Alexander Burnes)는 바미얀을 방문하여 불상을 "두 개의 우상(couple of idols)", "우아하지 않고 심지어 추하다(inelegant, even unsightly)”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불상이 야만인이나 원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릴 뿐이대출상품
라고 했다. 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즉 아시아 문화를 서구의 틀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잘 보여준다. 커다란 전환점은 1858년 프랑스 학자 스타니슬라스 주리앵(Stanislas Julien)의 『대당서역기』 번역이었다. 현장 법사의 정확한 기록이 유럽어로 번역되면서 바미얀의 정체성이 제대로 파악되게 된다. △ 현장 법사와 바미얀 지급수수료
석굴: 실크로드 불교 예술의 증인 현장 법사는 『대당서역기』 범연나국(梵衍那國) 조에서 바미얀에는 수십 개의 가람과 수천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특히 세 개의 거대한 불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남겼다. 왕성 동쪽에는 높이 백여 척의 황동으로 만든 부처상이 있었고(城东有鍮石釋迦佛立像,高百余尺), 황금빛 나고 보석 장식이 찬란했다(코발트스크랩
金色晃曜,寶飾焕爛)고 묘사하여 당시 바미얀 대불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현장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찾지 못한 380미터에 달하는 열반 와불이 왕성 동쪽 2~3리 떨어진 가람 안에는 있었다고 뚜렷이 적어 놓았다. 그런데 2000년대초 아프가니스탄 고고학자 타르지(Tarzi)는 이 열반불을 발견했지만 크기가 불과 10여 미터였다. 거대 와불의 실제 모습정부지원창업대출
은 아직은 미스터리다.   △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만남: 동대불 천정 벽화 동대불은 55미터의 부처 입상으로 무릎 한쪽이 약간 나와 있다. 이는 간다라와 그레코로만 조각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그림3)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이 불상의 천정 벽화에는 거대한 태양을 배광으로 전차를 타고 태양 망토를 걸친 채 검과 창을 든맞춤대출
태양신이 묘사되어 있었다.(그림4,5) 태양신 주변에는 날개를 단 전쟁의 여신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유사하다. 또한 횃불을 들고 태양신의 발아래를 비추는 배화교 신관의 모습도 확인된다.(그림6) 동대불을 마주보는 산비탈에 뚫린 구멍들은 천장묘(天葬墓)의 흔적으로, 이는 불을 숭배하고 태양을 신성시하는 조로아스터교가무직자 개인회생
이 지역에서 불교와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그림3. 간다라 불상과 유사한 동대불 그림4. 태양신이 그려진 동대불 천정(天井)의 벽화 그림5. 동대불 천정의 “태양신” 복원도 (宮治昭 監修,正垣雅子 筆) 그림6. 동대불 천정 벽화: 전쟁 여신(좌)과 반인반조(우) △ 서대불과 미륵 신앙의 융합 서대불 불상은 인도 굽타(Gupta) 마투라(Mathura) 불상과 매우 가깝다.(그림7) 서대불 천정에는 대좌에 앉은 불상을 중심으로 낙천(樂天)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천녀들이 춤추며 꽃을 뿌리는 정토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그림8) 특히 중앙의 보살이 손에 든 불로불사의 묘약 항아리는 미륵보살의 전형적 도상으로, 이는 미래불 미륵이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승 사상"과 "하생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미얀에서 태양신과 미륵불의 결합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이란의 미트라(태양신)가 가진 "빛의 구원자" 개념은 미래불 미륵의 "구세주" 성격과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동대불이 해돋이 방향에, 서대불이 해넘이 방향에 배치된 것은 태양의 순환 주기와 미륵의 미래 하생을 연결시킨 종교적 상징체계를 보여준다. 그림7. 인도 굽타시대 불상과 유사한 서대불 그림8. 서대불 천정의 벽화 “정토 세계” (宮治昭 監修,正垣雅子 筆) △ 바미얀 석굴의 현재 상황과 복원 노력 바미얀 석굴은 2001년 탈레반의 파괴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유네스코 주도의 국제적 복원 노력을 통해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헬레니즘, 간다라, 인도 문화가 융합된 이 석굴군은 태양신 숭배와 미륵 신앙이 결합된 종교적 관용의 독특한 사례이다. 따라서 바미얀은 종교 갈등이 심화되는 현시대에 문화 융합과 공존의 지혜를 전하는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이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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